낙서장

아까시나무 1부, 봄과 아카시아 09.

inKrain 2022. 9. 25. 21:30

반장이 너와 친하게 지낸 이유는 나 때문이란 걸 비로소 깨달았다. 교회에 부른 것도, 일부러 내게 말을 건 것도, 내 주변을 서성인 것도, 일부러 내 앞에서 너와 이야기한 것도 모두 나에게 한가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네 녀석이 원하던 것은 이미 내 것이 되었다.”

 

물론 1학년이 이렇게 과격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너와의 친분을 내게 과시하고 싶어 한 것은 분명하였다. 너를 독점하여 남들, 특히 나에게 과시하고 싶었다.

 

어떻게 나와 너의 관계를 눈치챘는지는 모르겠지만, 반장은 나의 좌절감과 절망감을 주기 위해 너를 자신의 즐거움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자리 바꾸기 소동때에도 너보다는 나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을 우선하였으니까.

 

자리 바꾸기 소동이후, 너는 나를 더욱 피해 다녔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반장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반장이 다른 친구와 노는 너를 선생의 심부름이란 핑계로 채 가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런 너를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산 녀석이 나를 봤으면 아마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두들겼을 것이다. 그리고 녀석의 똑똑한 머리로 나에게 멋진 조언을 해주었을 텐데, 하지만 녀석은 이제 없다. 이제는 나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너를 한시 빨리 반장으로부터 떼어놔야 했다. 반장은 나나 산 녀석과는 다르게 너를 소중히 하지 않으니까. 너를 반장의 마수로부터 구하고 싶었다. 설령 너에게 상처를 입히더라도, 너를 이용하기만 하는 악당으로부터 널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창밖이 하얀빛으로 가득한 날이 반복될수록 너의 모습조차 찾아보기 힘든 날이 많아졌다. 일진 녀석들이 나를 부르는 횟수는 점점 많아졌고, 학기 말이라는 핑계로 선생은 점점 많은 일을 너와 반장에게 시켰다. 매번 너를 찾아갈 때마다 반장이 나를 바쁘다며 돌려세웠다. 이대로 학기가 끝날까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산 녀석의 말을 듣지 않은 나 자신이 원망스럽고 과거의 망설임이 후회스러웠다. 시간은 나를 기다리지 않았고 학기는 점점 끝나갔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교회를 매주 나가기 시작하였다. 주변 어른들의 악의를 신경 쓸 시간조차 없었다. 그러나 교회에서조차 너의 곁에는 반장이 있었다. 언제나 천연덕스럽게 반갑다며 깔보는 녀석이 증오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을,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눈을 반장을 향해 뜨고 말았다. 반장은 그런 나를 볼 때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바깥 날씨보다 차가운 녀석의 웃음소리가 심장에 닿을 때마다 내 몸은 불에 타올랐다. 반장과 달리 너와 다른 아파트를 사는 것이 분했다.

 

감사하게도 자비로운 신은 나의 형식적인 신앙에도 보답해주었다. 정말로 하나님이 있는지는 아직도 의심스럽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기적을 행했다.

 

여느 날처럼 가장 먼저 교회를 빠져나가려던 나를 불러 세우는 사람이 있었다. 늦은 중저음의 목소리는 이제는 익숙했다.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목사였다.

 

이번 주 목요일이 크리스마스이브인데, 혹시 학교 끝나고 교회에 올 생각은 없니? 같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자. 분명 예수님의 기적이 너에게도 함께 할 거야.”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목사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였다. 네가 오냐는 질문. 그리고 반장이 오냐는 질문이었다. 너만 온다는 것이 확인되자 나는 꼭 오겠다고 목사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목사는 웃으며 조심히 가라며 나를 축복해주었다.

목요일 저녁, 나는 목사와 약속한 시각에 교회에 왔다. 교회에는 이상하게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저번 축제처럼 사람으로 번잡할 줄 알았던 교회가 너무도 조용했다. 나는 조용히 예배당으로 들어섰다. 거기에서는 목사가 혼자서 청소하고 있었다. 나는 목사에게 왜 사람이 이렇게 없냐고 물었다.

 

그야, 아직 시작할 시간이 아니니까 그렇지. 네가 좀 일찍 와서 교회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 시간에 와 달라고 부탁했단다. 예배당을 깨끗이 청소해야 하니 식당이나 다른 방에서 기다리지 않을래?”

 

목사는 그 말을 마치고 다시 청소에 열중하였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쩔 수 없이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너만 보일 뿐이었다.

 

내 발은 저절로 너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너에게 끌려갔다. 내가 바로 앞에 앉을 때까지도 너는 네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책에 그만큼 집중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나를 외면하고자 책에서 시선을 뗄 수 없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나의 입은 저절로 벌려졌고, 목소리가 멋대로 새어 나왔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너는 듣지 못한 척을 한 것이었을까? 대답 대신 페이지 넘기는 소리가 돌아왔다.

 

나는 그동안 별로 잘 못 지냈어.”

 

나는 꿋꿋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설령 네가 듣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미안하단 말을 전하고 싶어서 찾아왔어. 용서해주지도 않아도 괜찮아.”

 

너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친구인 너를 믿지 못해서 미안해. 나를 믿어준 너에게 상처를 주어서 미안해. 약속을 어겨서 미안해. 너무 늦게 찾아와서 미안해.”

왜 사과를 하는 거야. 네가 잘못한 것은 없어. 나쁜 건 나야.”

 

마침내 다문 입을 연 너는 이미 시들었다. 떨리는 목소리는 나의 심장을 콕콕 찔렀다.

 

아니야.”

 

나는 단호하게 딱 잘라서 대답했다. 정적이라는 모세가 나타나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 나는 억지로 모세를 쫓아내려고 입을 열었다.

 

나쁜 건 나야. 지금도 네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사과를 하고 있으니까.”

 

너의 연약한 마음에 다트를 던지기 시작했다. 던지는 것이 다트에 맞는 것보다 아플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과녁에 적중한 핀은 너의 책을 내려놓게 했다.

 

솔직하게 전부 말할게.”

 

다시 다트를 손에 쥐었다. 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교회에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너를 속였어. 아무 일 없다고.”

 

너는 조용히 듣기만 하였다.

 

어른들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서 혼자 숨어 있었어. 어른들은 나를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거든. 아니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어.”

 

과녁에 또다시 핀이 적중했다. 구멍이 숭숭 뚫려가는 다트판을 보는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네가 좋아하는 교회이니까, 교회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서둘러 말을 돌린 거야. 그 말이 너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는 생각하지도 않았어.”

 

말이 없는 너를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너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멈출 수 없었다.

 

네가 우는 걸 보고 나서야, 잘못한 걸 알았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줄 몰랐어. 지금도 그때 어떤 말을 하는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어. 너의 눈물은 내내 나를 아프게 했어.”

 

과녁을 맞히고 핀을 뽑아내고 다시 맞히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너의 마음에 바람구멍을 몇 개나 냈을까. 고개를 들지 않는 네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이 괴로워서 사과하러 온 거야. 다시 친구로 돌아가고 싶어서 사과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만 힘들어지고 싶어서 찾아왔어.”

 

불스아이에 적중했는지 결국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침묵 대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각오는 했지만, 심장이 멈출 뻔했다. 멍청한 내가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인 것이 분명하다.

 

고개를 들어줘.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부 해줘. 나를 미워해도 괜찮아. 어차피 나는 모두가 미워하니까.”

 

너는 그제야 내 눈을 마주 보았다. 나는 억지로 고개를 고정하고 눈동자를 고정하고 물바다가 된 너의 얼굴을 보았다.

 

너를 미워하지 않아.”

 

너는 웃어보았지만 너의 미소를 눈물이 가렸다.

 

그건 거짓말이지?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 말야.”

 

나도 억지로 웃어 보였다. 웃기라기보다는 입 근육을 움직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정말이야, 너에게 그런 소문이 들리게 한 내가 미웠어. 네가 힘든 걸 아는데, 괴롭힘당하는 것을 아는데도, 아무것도 못 해준 내가 미웠어. 용기가 없는 내가 미웠어. 너를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었어.”

 

눈물이 차올랐지만, 흘러내리길 불허했다.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너에게 말을 꺼냈다.

 

그럼 처음에 말을 걸어준 것도 내가 괴롭힘당해서 그런 거야?”

, 맞아. 하지만 너와 이야기를 하고 나서 주변 아이들이 너와 놀지 말라 했어. 너랑 놀면 나도 정신이 이상해진다고 다들 그랬어. 너랑 놀면 친구 그만하겠다는 아이도 있었어. 그래서 네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아도 내 친구들이 먼저였던 나는 가만히 있었어.”

 

산 녀석의 예상은 틀렸다. 녀석도 나도 너에게 다가가지 않았기에 너의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줄 몰랐다. 멋대로 상상했을 뿐이었다. 이미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나에 대한 나쁜 소문이 돌고 있었었다.

 

그래서 네가 우산을 들고 와준 날은 정말 반가웠어. 같은 우산 아래서 다시 이야기하고 싶었어. 이산 때문에 모든 계획이 어긋나긴 했지만, 오히려 그날 이후 너를 신경 쓰지 않기가 힘들어졌어.”

 

나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입을 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너는 바보였다. 모두가 미워하는 아이에게는 정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을 모르는 바보였다.

 

너에게 다시 말을 걸기엔 큰 용기가 필요했어. 네가 내 주변을 서성일수록, 나는 너한테 미안해서 버틸 수 없었어. 네가 너를 위해서 사과를 한 것처럼 나도 나를 위해서 너에게 찾아간 거야.”

 

비로소 너의 눈물이 완전히 멈췄다. 그동안 맡을 수 없었던 은은한 아카시아 향이 다시 내 코끝을 간질였다. 향기가 코를 지나고 머리를 지나고 마음에 도착하자 눈물이 떨어졌다.

 

, 내가 너무 나빴지. 미안해.”

 

시무룩해진 너의 얼굴을 보고 나는 억지로 목소리를 짜냈다.

 

아니야, 괜찮아. 너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너는 알겠다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오랜만에 마주한 너는 많이 변해있었어. 더 야위고, 수척해지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어. 하지만 나를 보는 그 눈빛과 미소만큼은 변치 않았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네가 나를 기다렸다는 말을 듣고, 더는 주변 친구들의 말을 믿지 않기로 했어. 너는 소문과 달리 착하고 마음이 강한 아이라고 생각해. 너와 친구가 되기로 한 약속을 하고 몇몇 아이는 다시는 나와 놀지 않게 되었지만 후회하지 않았어.”

 

너도 나와 친구가 되어서 주변 아이들이 떠났구나. 산 녀석이 나를 그토록 미워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너의 행복을 부수기만 하였으니까 너의 행복을 지키고자 했던 산 녀석이 나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서 널 봤을 때는 너무 기뻤어. 너를 외면했던 나를 믿고 약속을 지켜줘서 고마웠어.”

 

내가 말을 끊었다. 너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조금 괴로웠다.

 

설마 내 말을 듣고 그동안 나를 외면했던 게 미안해서 눈물이 난 거야? 그게 미안해서 여태껏 피해 다닌 거고?”

 

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한테 실망하고 미워할 줄 알았어. 그래서 너한테 다가가기가 무서웠어. 나는 너랑은 다르게 마음이 강하지 않았거든.”

 

마음이 강하기는, 산 녀석도 너도 나를 너무 과대평가한다. 너를 다시 마주 보는데 반년이나 걸린 겁쟁이일 뿐인데. 이런 나를 좋게 봐주는 네가 고마웠다. 이 마음을 네게 전하고 싶었다.

 

고마워. 오늘도 나와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용기 내줘서, 솔직하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아냐, 내 쪽이 더 고마워. 너를 피하기만 한 나에게 말을 걸어준 건 너잖아. 역시 너는 착한 아이였어.”

 

나는 겨우 웃을 수 있었다. 꿈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너와 함께 웃는 순간이었다. 아기 예수가 일으킨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까?”

 

내 물음에 너는 얼굴이 붉어졌다. 망설임 없이 당연하지라고 외친 너에게 감사했다.

 

우리는 다시 약속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어느새 많은 아이가 식당에 와 있었지만, 우리 눈에는 서로만 보일 뿐이었다.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릴 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예배당에 들어선 우리는 함께 자리에 앉았다. 주변 어른들이 우리에 대해 수군거렸지만 나는 너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잡아주었다. 너는 나를 보며 활짝 웃어주었다.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물어봐도 돼?”

 

신앙심이 없었던 나는 예배의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너한테 말을 걸었다. 너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이산도 2학기에 괴롭힘당했잖아. 그런데 왜 이산은 도와주지 않았어?”

너를 괴롭혔잖아. 내 친구를 괴롭힌 아이를 도와주고 싶지 않았어.”

 

너의 대답은 아무렇지 않게 내 심장을 찔렀다. 그날 이후에도 줄곧 나를 친구로 여겨줬을 줄 몰랐다.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산 녀석은 너를 좋아했어. 너를 힘들게 하는 내가 싫어서 나를 괴롭힌 것이었어.”

이유가 뭐든, 남을 괴롭히는 것은 잘못한 거야. 산이가 정말로 나를 좋아해서 그랬다고 해도 나는 산이를 싫어했을 거야.”

 

너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착한 너였기에 나쁜 짓을 일삼는 아이를 싫어할 거라고는 예상은 했다. 그래서 더더욱 반장과 친하게 지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럼 반장이랑은 왜 친하게 지내는 거야?”

 

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반장이 왜?”

반장도 나를 되게 싫어해. 산 녀석처럼 직접 괴롭히는 것은 아니지만.”

 

곧 너의 인상이 구겨지더니, 얼굴에 머릿속 혼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너는 이해 가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 우준이는 너랑 친하다고 그랬어. 그래서 너와 어떻게 사이를 회복할까 같이 고민도 하고, 그랬어. 실제로 축젯날에도 너를 되게 신경 써 줬잖아. 나는 당연히 둘이 친한 줄 알았어. 나 때문에 둘 사이가 멀어진 줄 알고 걱정했는데.”

 

반장의 악랄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너의 상냥함마저 이용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겨우 회복한 너의 마음에 더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적당히 그렇구나 하고 둘러대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반장 생각만 하면 내 마음속의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건 전부 거짓말이야. 반장은 너를 친구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그냥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너를 이용하는 거야.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해.”

 

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를 멈췄다.

 

우준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야. 네가 오해한 거야. 그 애가 얼마나 아이들에게 착하게 대하는데.”

 

너는 반장을 변호했다. 내가 아니라 반장 편을 드는 네가 미웠다. 그리고 너를 이렇게 만든 반장이 미웠다. 점점 산 녀석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내게 힘이 있었다면 반장을 때려눕혔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착한 애가 왜 자리 바꾸는 날에는 너의 생각을 묻지도 않고 너랑 같이 앉고, 너는 나랑 앉기 싫다고 모두에게 이야기하고, 네가 울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야?”

 

나를 믿어주지 않는 네가 미웠다. 그래서 너를 너무 쏘아붙였나 보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테이프로, 풀로 겨우 붙여 놓은 우리 사이가 너무도 쉽게 다시 떨어졌다.

 

같이 예배당을 나왔지만, 우리 사이의 거리는 어제보다도 멀어진 듯했다. 교회 문을 나서니 정말 꼴도 보기 싫은 반장이 서 있었다.

 

, 학원이 일찍 끝나서 같이 돌아가려고 기다렸어.”

 

반장의 머리엔 하얀 눈송이로 가득했다. 너 옆에 있는 나를 보자 표정이 미묘하게 바꾸었다.

 

? 너도 왔었구나? 여기서 이렇게 보니 반갑네. 교회 열심히 나오는 것 같아서 기뻐. 그럼 가자. .”

 

너의 손을 낚아챈 반장과 그 손에 끌려간 너와 홀로 남겨진 나. 차가운 눈송이가 나를 덮쳤다. 겨울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눈물이 났다.

 

다음 날, 아침부터 나를 부른 것은 일진이 아니라 선생이었다. 교무실로 불려간 것은 오랜만이었다.

 

왜 불려왔는지는 너도 알지?”

 

당연히 그 이유에 대해 감조차 잡을 수 없었던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참나, 여자애를 울리고도 모른다고 하다니. 선생님은 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구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여자애를 울렸다고? 설마 어제 일을 말하는 것인가? 어제 일을 아는 사람은 나와 너 말곤 없을 텐데 선생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너는 어떻게 맨날 선생님의 속만 썩이니, 수업도 열심히 안 듣고, 맨날 친구랑 싸우고, 이제는 힘없는 아이를 괴롭히기까지 하다니.”

 

나는 그런 적 없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은 이제 거짓말까지 한다고 호통을 쳤다. 교무실에는 나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담임선생보다 연배가 높은 선생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끝까지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다.

 

선생님, 제가 그랬다고 누가 그랬어요? 저는 정말로 안 그랬어요.”

 

결국, 손찌검이 날아왔고 나는 그대로 날아갔다. 나이가 들었어도 어른의 힘은 아이의 힘과 차원이 달랐다.

 

우준이가 매번 네가 아이들을 괴롭힌다고 해도 선생님은 너를 믿고 혼내지 않았다. 우준이가 오해했다고 생각했다. 어제 우준이의 전화를 들어도 너를 믿고 싶었다. 그러나 이렇게나 뻔뻔하다니, 정말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내일 부모님을 부를 것이니 그렇게 알아라.”

 

전부 거짓말이겠지. 어른은 항상 거짓말을 한다. 걱정하는 척, 믿는 척, 이해하는 척, 온갖 척을 하지만,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는 진심을 밝힌다. 결국은 내가 싫어서 부모님을 부르겠다는 것이다. 내 말은 한 번도 믿은 적 없던 사람이 반장 말은 그렇게 철석같이 믿는 것이 웃길 뿐이었다. 나는 반장에게 복수하리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