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떨어지는 건 낙엽만이 아니다.
찬란한 여름이 지나고 나면 다가오는 건 쌀쌀한 가을 날씨뿐이다. 차가운 하늬바람은 하늘 높이 잎새를 날렸다가 처참히 추락시키고 만다. 그렇게 바닥에 떨어진 잎사귀는 바스러져 가루가 되어 다시 높새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만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너에게는 내가 낙엽과 같은 존재일 테다. 누구보다 화려하게 몸단장을 하지만 결국은 너를 갖지 못하고 추락하고 마는 낙엽.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가 없다. 낙엽이 스스로를 꾸미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결코 추락을 두려워한적이 없다. 가을이라는 계절에 너를 만났기에 누구보다 내 자신을 드러내고 싶을 뿐이다. 나는 봄 같은 화사함도 여름같은 정열도 없기에, 내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밖에 없다. 억지로 몸에 맞지 않은 색깔을 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주기만을 바란다. 물론 너는 내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우리는 가을에 만났으니까. 내가 열심히 스스로를 단풍들게 하고 있으니까. 단풍은 자연스레 드는 것인데 나는 그 속도를 가속시키고 있다.
조만간 나는 바람에 날려 저 멀리 떠나버릴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안다. 나는 분명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 거다. 가을바람조차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주제에 너에 맘에 들기 위해 스스로를 죽이고 있으니까. 바스러지기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 내가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사실은 너와 겨울을 맞이하고 싶었다. 너의 아름다움은 상록의 싱그러움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상록을 포기하였다. 너의 눈에 띄는 단 하나 뿐의 잎새가 될 수 있다면, 내 몸이 사라지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다. 어차피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더 오랜 기억에 남을 수 있게 하는 편이 더 좋으니까. 너가 나를 잠시라도 더 지켜봐준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좋다.
내가 하늬바람을 타고 저멀리 너를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간다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