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공장

모기는 피를 뽑아가지만, 너는 다른 것을 뽑아간다.

inKrain 2022. 10. 2. 23:52

오늘도 모기에게 피를 뽑혔다. 아프지는 않았다. 애초에 모기는 작고 연약한 생명체다. 줄 수 있는 통증이 커봤자 얼마나 하겠는가. 오히려 고통보다는 후유증이 쪽이 더 큰 것 같다. 계속 내 손으로 상처를 긁게 만드니까. 너와는 반대다.

 

너는 직접 날 상처입힌 적이 없다. 당연히 피를 흘리게 한 일도 없었다. 그러나 너가 준 통증은 모기보다도 더 크고 아팠다. 내 마음을 통째로 뽑아갔기 때문이다. 마음이 뽑히는 건 고통이 동반하는 행위이다. 모기보다 더 빠르게, 더 은밀하게, 더 순식간에. 작고 여린 생명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이다.

 

분명히 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마음을 준 게 아니다. 나로부터 마음을 멋대로 뽑아간 것이다. 그래도 너로부터 마음을 돌려달라고 할 의향은 없다. 내 마음을 뽑아간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음을 잃은 내가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이유라도 그 나름 중요함이 분명 있을 테다. 모기에게 뽑혀간 혈액을 그리워하지 않듯 네가 뽑아간 마음에 대한 그리움도 없다.

 

다만 마음이 뽑혀 나간 빈자리에는 작은 하수도가 생겼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하수처리장으로 거치지 않고 밖으로 향하는 하수도였다. 끝없이 눈물을 뱉어내는 하수도는 악취가 나는 감정 가득 싣고 세상으로 달려나간다.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마음이 없이 사는데도 나름 익숙해졌다. 매 순간 너가 떠오르는 것 말고는 후유증도 없다. 며칠씩이나 가려움을 주는 모기와는 다르다. 후유증이 없다.

 

피가 다시 재생하듯, 마음도 분명 언젠가 다시 생겨나겠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다시 마음이 자라날 것이다. 그 마음이 하수도의 출구를 가로막아 추악한 감정이 새어나오지 못하게 다시 막아줄 것이다. 하지만 새로 생겨난 피가 모기에게 뽑혀나간 피와 다르듯, 너가 가져간 마음과 다른 마음이 생겨날 것을 알기에 조금 쓸쓸하다. 내심 네가 다시 나에게 마음을 돌려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너는 모기와 다르게 생존을 위해서 가져간 게 아니니까. 필요가 다하면 버리지 말고 내게 돌려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마음을 너에게 준 게 아니다. 너가 멋대로 뽑아간 거다. 물론 제대로 마음을 간수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겠지만, 세상에 모든 것을 대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모기장을 치고, 모기향을 피워도 자고 일어나면 모기 물린 자국이 여럿 남아있는 것처럼. 나도 언제나 내 마음을 뺏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미소를 참고, 관심을 숨기고, 희망을 꿈꾸지 않고, 현실로 눈을 돌리면서. 그럼에도 내 마음을 뽑혀나갔다면, 내 탓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다.

 

너가 밉다는 건 아니다. 피를 뽑아간 모든 모기를 미워하지 않듯이. 다만 마음이 뽑혀간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더러운 감정이 섞인 하수를 네가 주의해 주었음할 뿐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그 하수도는 더럽고, 추악하고, 꼴불견이니까. 이런 모습은 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은 언제 자라난 걸까. 이 마음이 완전히 자라기 전에 마음을 돌려주러 오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