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아까시나무 1부, 봄과 아카시아 03.

inKrain 2022. 9. 25. 20:15

 “, 너 같은 멍청이가 왜 린이랑 친한 척하는 거야. 너 같은 반쪽짜리가. 린이가 착해서 너랑 이야기해주는 거지 린이도 너 엄청 싫어해. 그니까 다시는 린이한테 말 걸지 마. 알아들었어?”

 “싫어. 린이는 내 친구야.”

 

곧 주먹이 내 명치에 꽂혔다. 나는 컥 소리도 내지 못하고 내동댕이쳐졌다

 

역시 반쪽짜리니까 알아듣지 못한 거야? 친구처럼 굴지 말라고!”

 

 녀석이 저렇게 소리친 것은 처음 봤다. 애초에 나 같은 먹잇감에는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녀석인데 소리를 질렀다. 그 고함에 나는 오히려 굴복할 수 없었다. 너를 포기할 수 없었다.

 

 “싫어. 나는 린이랑 친구고, 앞으로도 친구 할 거야.”

 

 이번엔 정강이에 킥이 날아왔다. 그러나 맞는 것에는 익숙했다. 싫어. 싫어. 싫어. 내가 거부할수록 구타의 강도는 강해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입장을 고수했다.

 

 “싫다고 말했잖아. 린이가 그렇게 좋으면 가서 친구 하자고 하면 되잖아!”

 

 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 소리쳤다. 더 강한 주먹이 날아올 줄 알았지만, 녀석은 쭈그려 앉아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틈에 도망쳐 집으로 돌아갔다. 멍이 많이 들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저 일진 녀석을 이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녀석은 아무래도 너를 좋아했나 보다.

 

 나를 괴롭히던 녀석은 흔히 떠올리는 불량학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키도 크고 외모도 준수해서 좋아하는 여자아이도 많았다. 단정한 바가지머리가 드물게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수업도 열심히 듣고, 공부도 잘했다. 친구도 많아서 반장선거에서도 당선이 되었다. 물론 1학년이라서 다들 거기서 거기였겠지만, 유독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아이들이었던 것을 보면 특별히 우수했던 것은 맞는 것 같다. 교실 내에서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였다. 그러나 선생이 사라지면, 녀석은 돌변했다. 마치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학교의 구석으로 부하들을 끌고 가 집단으로 나 같은 아이를 구타하고 조롱하고 모욕했다. 녀석에게는 이것이 일종의 놀이였다. 내가 당하는 모습이 즐겁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꼈다. 녀석에게 난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녀석은 장난감이 망가지지 않게 세심히 다루었다. 때로는 양호실에 데려가기도 하였고, 때로는 교실까지 부축해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까지나 장난감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보수한 것에 불과했다. 녀석은 나 같은 모자란 학생을 도와줌으로써 선생에게 더 좋은 평판을 쌓고, 나를 점점 마리오네트로 만들고자 하였다. 확실히 머리가 좋은 녀석이었다.

저항은 오래전에 포기했다. 반항할수록 괴롭힘의 강도가 강해진다는 것을 겪어 알았기 때문이다. 선생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녀석은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반쪽짜리가 하는 말보다는 모범생의 말이 더 신뢰가 가는 것이 선생의 본능이다. 하지만 방학식 날, 나는 처음으로 폭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날 깨달았다. 쟁취해야 한다고. 내가 원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힘으로 지켜내지 않으면 영영 잃어버린다고. 나의 것을 지키기 위해 나를 버렸던 그 교회로 다시 향하였다.

 

 나는 신을 믿지 않았다. 신의 존재를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교회 부속 유치원을 나왔기에 크리스트교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수는 없었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성경 마태복음 77, 많은 기독교인이 좌우명으로 삼는 구절이자 내가 신을 믿지 않게 이유다. 나는 그토록 구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거짓말쟁이인 신을 더는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얻고자 한 것은 그다지 거창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하나님은 내게 주지 않았다. 나는 단지 존중을 원했다. 동등한 사람으로서의 존중을 원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구하고 찾고 두드려도 소용없었다. 물론 내 신앙이 모자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안겨준 실망감은 모든 신앙심을 앗아갈 정도로 강렬했다. 그래서 교회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내 머릿속의 교회는 코가 길어지지 않는 피노키오가 순진무구한 목각인형을 피노키오로 만드는 공장 같았다. 하지만 그 공장 속에는 네가 있었고, 너를 만나기 위해 겨우 도망쳐 나온 피노키오 공장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더는 신에게 구해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내 손으로 쟁취해낼 생각이었다. 신으로서는 이만큼 불경한 자가 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자식을 사랑하는 하나님이시라니 이런 나도 사랑해주시리라 하는 믿음이 어딘가 있었던 것 같다.

 

 호기롭게 내디딘 첫걸음 뒤에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수군거림만이 가득하였다. 부모님은 불교 신자이셨기에 나 홀로 교회로 걸어갔다. 이 지역 한인 사회는 아주 작았기에 나에 대한 소문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어른이라는 존재는 아이가 생기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아이가 한 이야기라면 그것이 무조건 맞는 줄 알고 철석같이 믿어버린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해도, 거짓말임을 의심하기 대신에 아직 어려서 기억력이 좋지 않다며 멋대로 이해해버린다. 그리고 종종 아이가 한 저급한 거짓말을 주변의 다른 어른에게 이야기해주곤 한다. 그 저급한 거짓말의 허점을 자신의 상상력과 논리력을 바탕으로 보완해서 그럴싸한 이야기로 만들어 주위에 소문을 낸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른은 아이가 한 이야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심하지 않고 사실로 믿어버린다. 아이는 순진무구하고 눈처럼 새하얗다는 선입견이 가져온 참극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눈처럼 하얀지 청산가리처럼 하얀지는 맨눈으로 구분할 수 없다.

 

 내 소문은 상상 이상으로 안 좋게 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결코 그런 나쁜 소문을 내 앞에서 티 내지 않았다. 어린이와는 다르게 대신 아주 영악하게 그 소문이 사실인지 간접적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다들 내 앞에서는 웃으며 환영한다고 맞아주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함께 맞이하자며 선물도 주었다.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시선 어디에도 환영하는 눈동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다들 피노키오였다. 코가 길어지지 않을 뿐 거짓말쟁이 인형이었다. 그 거짓말투성이 눈동자를 마주치는 것이 힘들어, 쓸쓸한 내 4인용 벤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너를 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예배당 그 어느 곳에도 너는커녕 또래 어린이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예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눈으로 황급하게 너를 찾는 나와 달리 어른들은 반갑다는 듯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너를 찾던 중 내 이야기가 귀에 들렸다. 그것도 여러 곳에서 동시에 들려왔다. 남들보다 귀가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너를 찾기 위해 신경이 곤두서있던 터라 아주 작은 목소리까지 귀에 포착되었다.

 

아까, 저 아이, 역시 소문대로 좀 이상한 것 같아.”

머리가 좀 그렇다는데 그게 정말인가 봐.”

역시 혼혈아들은 지능이 떨어진다는 게 사실인가 봐.”

우리 아들이 그러는데 애가 학교에서도

 

 유난히 목소리가 컸던 저 두 여성분의 대화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저 두 분을 뵌 적도 없었다.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나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것이 괴로웠다. 그러나 도망치기에는 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 소음을 조금이라고 줄이고자 어쩔 수 없이 목소리가 가장 크셨던 저 두 분께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 안녕하세요, 교회에 처음 와서 그런데, 원래 교회에는 어른만 오나요?”

 

 두 사람은 당황한 듯 보였다. 이유야 내 쪽에서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질문을 꽤 큰소리로 했는지 주변의 웅성거림이 좀 더 심해졌다. 나에 대한 온갖 수군거림. 어른들은 어린이와 달리 절대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내가 싫다면 내가 싫다고 직접 조롱하고 놀리고 때린다. 그러나 어른들은 본인들끼리 나에 관해 이야기하고 앞에서는 친절하게 대해준다. 어른들의 거짓말을 보는 것이 직접 괴롭힘당하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제 친구가 같이 교회 다니자고 했는데, 친구도 안 보이고 어른들밖에 없어서요.”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 눈치를 보며 내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때 목사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대답해주었다.

 

아아, 교회에 처음 와서 잘 몰랐구나. 초등학생이니?”

 

나는 짧게 네라고 대답했다.

 

초등부 예배라면 11시부터 시작이란다. 여기서 성인 예배를 같이 들어도 좋고 11시까지 식당에서 쉬면서 기다려도 좋단다.”

 

 이 사람은 특이하게도 나를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무 감정도 없는 기계 같은 눈을 가진 남자였다. 그러나 교회에서 만난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인간 다운 눈이었다. 나는 짧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예배당을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는 순간까지 어른들의 수군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최대한 그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너의 목소리를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