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의 유작(上)
1
골방이 청년이었고, 청년은 살아있는 골방이었다. 골방 밖은 너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청년보다 반짝거리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길에 누워있던 노숙자조차도 청년보다 생기가 넘쳤다. 아무도 찾지 않는 먼지 쌓인 골방. 아무도 찾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단 한 사람이 누추한 골방의 문을 두들긴 사람이 있었다. 아리따운 아가씨였다. 특이 취향을 가진 아리따운 아가씨. 문을 열어주지 않았음에도 억지로 문을 열어서 골방의 주인이 된 무대뽀 아가씨였다.
청년의 삶은 아가씨와 함께하는 삶이 되었다. 그리고 아가씨와의 이야기를 남기기 시작했다. 꿈을 향한 최후의 신뢰였다.
그 아가씨를 만난 건 우연이었지만, 아가씨의 말에 따르면 인연이었다. 늙은 교수의 지루한 강의실이 그 장소였다. 옆자리였던 그 아가씨는 청년과 마찬가지로 수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수업보다는 수업을 듣는 어른들에게 관심이 있었던 듯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청년과 눈을 마주칠 일은 없었을 테니까. 아가씨의 긴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를 관찰하던 청년과 눈을 마주칠 일이 없었을 테니까. 청년은 수많은 어른 사이에서 독특한 한 어른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곤 했다. 그 사람은 언제나 검은 구두를 신고 다녔다. 그 구두가 신경 쓰였다. 작은 리본 장식이 달려있던 검은 구두가 왜 그렇게 신경이 쓰였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저 그 검은 구두에서 골방에 두고 온 낡은 키보드와 겹쳐 보였다. 내 옆자리로 또각또각 걸어오는 소리가 낡은 키보드 소음과 비슷해서 그랬던 걸까. 이 무렵에는 리본 달린 구두의 주인보다는 구두에 더 관심이 컸다. 그 구두의 주인에게 말을 걸 용기는 없었다. 사람에게 말을 거는 법을 잊어버렸으니까. 정말 실패한 작가 지망생이다. 대화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무슨 문학을 쓸 수 있겠는가.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순간에 오히려 눈을 떼지 못했다. 아가씨도 눈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 그 순간 골방의 문이 열리고 말았다.
늙은 교수의 수업이 끝나고도 나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저기, 다음 수업도 여기예요?” 처음 듣는 목소리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어쩐지 당연히 이 사람에게는 이런 목소리가 날 거라고 생각했다.
“아뇨, 이제 가보려고요. 잠시 생각할 게 있었어요.”
“무슨 생각이요? 제 생각이라도 하고 계셨어요?”
아가씨는 생긋 웃으면서 말을 계속 걸어줬다. 웃는 모습이 참 화사했다.
“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으니까요.”
아가씨의 볼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인연이네요.”
대화를 할 줄 모르는 나는 어째서 아가씨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지 못했다. 그때 왜 그랬는지 깨달은 건 최근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 순간에도 아가씨가 짓고 있었던 미소는 정말 아름다웠다.
“식사라도 같이하실래요? 저는 수업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요.”
대화가 끊겨 버려서 방금 고민 끝에 하려던 말을 했다. 시간이 남았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곧바로 다음 수업이 있었지만, 아가씨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원하고 있었다. 이름조차 모르는 아가씨.
“그렇게 말을 걸려고 했던 건 아니죠?”
“그런 반응을 보아하니 좋은 화두는 아니었나 봐요.”
“참,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식사라도 같이하면서 천천히 이야기해보죠. 따라와요.”
그 말을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키가 크시네요.”
“생각보다 키가 작으시네요.”
“그 말 되게 무례한 말인 거 아세요?”
“아, 죄송합니다.”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재밌는 사람이네요.”
아가씨가 생각보다 키가 크지 않다는 사실을 그제야 눈치챘다. 내 어깨 위치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시선은 낯설었다. 하지만 그 시선은 내가 봐 온 어느 어른보다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어른과 달랐다.
2
대학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어른이었다. 어른은 낭만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늘보다는 땅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공부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암기하고 있었다. 성적을 받기 위한 암기. 모두가 필사적으로 필기를 하고 늙은 교수의 목소리를 기억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어른이지 못한 청년은 그럴 수 없었다. 청년은 아직도 키보드를 버릴 수 없었기에, 늙은 교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그 대신 밤마다 낡은 키보드로 문장을 적어 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꿈을 모르는 바보라며 학점의 노예라고 비아냥거리는 글을 썼다. 본인은 공부조차 하지 않으면서 남의 노력을 깎아내리기만 하였다.
그러나 어른이란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고 살아갔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대학이었다. 모두가 자기 행동 하나하나에 책임을 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허영심과 자만심을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바보가 나였다.
키보드를 처음 잡았을 때의 두근거림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이제는 키보드가 하나의 저주가 되어버렸다. 우울함으로 이끌고, 자존감을 죽이는 괴물이 낡은 노트북에 달려있었다. 적어낸 문장은 하나같이 상투적이라 최악이었다. 나는 최악의 문장을 적어내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지망생이라고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청년이 적어낸 시에는 감정이 없고, 청년이 쓴 소설엔 사건이 없으니까. 청년에게는 재능도 성실함도 간절함도 없으니까.
키보드를 내려놓으려니 손가락이 떨린다. 그렇기에 내려놓는 이 순간까지도 키보드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평생 문학을 위해 달리다 키보드를 내려놓으려니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 다행히 아무것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감사하게도 공허함과 좌절감만큼은 남아있었다.
한때는 문학이 꿈이었다. 롤모델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그가 이십 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써낸 것처럼, 청년도 나름의 슬픔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너무 어렸고, 문학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 문학이란 게 본인 생각을 주절주절 적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챈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변명해보자면 전문적 문학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고 말하고 싶지만, 결국은 변명일 뿐이다. 사회는 변명을 듣고 정상 참작해주지 않는다. 결과로 증명하는 자리가 사회이니까. 고민의 흔적과 노력은 고려해주지 않는다. 애초에 그조차도 모자랐다.
골방에서 만든 데이터 쪼가리로 응모한 신인 작가상은 당연하게도 전부 낙선하였다. 그야 청년이 쓴 문장은 문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플롯도 구조도 대화도 묘사도 모두 엉망이었다. 그런 문장 더미를 문학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웠다. 잘못은 순전히 본인에게 있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청년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현실은 성장소설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난을 딛고 일어선다는 게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작가가 가난한 직업이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면 가난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이상을 펼칠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현실과 타협하여 글을 쓰는 기계가 될 각오가 있어야 했다.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 시절 어느 쪽으로도 각오를 다지지 못한 청년은 스스로 유예해주었었다. 글보다는 사람을, 사람 중에서도 청년을 바라봐주는 한 사람을 지켜보는 데 시간을 보냈다. 아직도 낭만을 좇는 어른, 조금 특이한 어른이었다. 골방 속 청년은 내가 되고 말았다.
3
아가씨는 학교 주변 처음 가는 경양식 집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그곳으로 가는 내내 나는 아가씨와 같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제학도였던 나와 달리 아가씨는 문학도였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그리고 동기이지만 재수를 한 누나라는 사실도 알고 말았다.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오랜만이라 마음이 두근거렸다. 떨렸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려나. 이 감정이 낯설어서 대화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나를 올려다보며 지어준 미소뿐이었다.
메뉴는 당연하게도 돈가스를 시켰다. 경양식 집이었으니까. 누나는 특이하게도 감자튀김을 시켰다.
“누나는 감자튀김으로 배가 차요?”
“그래도, 새롭잖아. 새로운 친구를 만났는데, 새로운 음식을 먹어봐야지.”
어느새 누나는 나를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들처럼 편하게 말을 놓았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쁜 감정이 들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분명 누나가 말한 무례한 행동에 속했을 텐데. 나는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누나는 나와의 대화에 어울려 주었다. 감자튀김은 동난 지 오래였는데도 어색한 대화가 끊기지 않았다. 결국 수업 시간에 못 이겨 누나가 먼저 자리에 떴다.
“바래다줄게요. 이것도 무례한 행동인가요?”
내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니, 안 바래다주는 게 무례한 거야.”
누나가 미소로 대답해주셨다.
누나와의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오래갔다. 무례할 정도로.
일주일에 한 번뿐인 수업인지라 누나와는 자주 만나지 못했다. 바쁜 누나를 먼저 불러내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쓸쓸한 골방에서 낡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누나를 기다리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누나는 소설가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작가 지망생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면서도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문학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고, 문학의 꿈에 진심이고, 문학의 길을 걷는 사람이었다. 나는 누나의 그림자만도 못하는 사람이란 걸 짧은 만남으로도 알 수 있어서 차마 내가 작가 지망생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부끄러웠다.
4
화요일 열 한시 수업이 끝나면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함께 경양식 집으로 걸어갔다. 누나는 내가 말을 꺼내지 않으면 입을 먼저 여는 법이 없었다.
“누나, 신춘문예 준비는 잘 돼 가요?”
“어머, 웬일로 그럴듯한 화두야?”
누나가 나를 보고 킥킥대면서 웃어 보였다.
“다행히도 잘 되어가는 것 같아. 초고도 벌써 완성했고. 보여줄까?”
몇 주간 기운 없어 보이던 누나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영광이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오늘따라 누나의 작은 키가 좀 더 커 보였다.
늘 그랬듯이 나는 돈가스를 시켰다. 솔직히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다. 그냥 경양식 집이니까 예의상 시키는 느낌이 강했다. 무례하지 않도록. 아직도 경양식 집에서 감자튀김으로 배를 채우는 누군가와는 다르게.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평소보다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처음으로 강의실과 경양식 집을 벗어났다.
우리가 향한 오래된 카페에는 손님이 없었다. 학교 앞 스타벅스와는 다르게 조용했다. 낡은 의자에 앉은 누나는 본인 손만큼이나 새하얀 노트북을 꺼내주었다. 내 것과 달리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있었다.
“자, 여기. 단편이라서 금방 읽을 거야.”
원고보다는 누나의 눈동자가 더 눈에 들어왔다. 초롱초롱 빛나는 맑은 눈이었다.
“어허, 빨리 읽어봐. 조금 있다가 수업 가야 한단 말야.”
하는 수 없이 누나의 문장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누나의 문장은 내 문장과 다르게 치밀하고 세심했다. 하나의 주제로 끈끈하게 엮인 아름다운 문학이었다. 누나의 말대로 금방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충격은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꿈꾸던 괴테가, 내가 원하던 젊은이의 슬픔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상처를 숨긴 유쾌한 이야기가 내게 평생 넘지 못할 벽을 보여줬다.
“야, 갑자기 왜 울어. 눈물 어서 닦구.”
누나가 내가 흐르고 있는지도 몰랐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는 서둘러 눈물을 감추었다.
“부러워요.”
한참은 뜸을 들이다 겨우 목소리를 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감춘 비밀을 알려주었다. 자신도 작가 지망생이었다는 보잘것없는 비밀을 밝히는 데도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누나 앞의 나는 너무도 작았다.
“그렇구나? 오구, 그래서 부러웠어. 눈물이 막 줄줄 나올 정도로. 이 누나가 글을 좀 잘 쓰긴 하지?”
“네, 진짜로 너무 대단해요.”
누나가 생긋 웃어주었다. 누나의 문장보다도 더 찬란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슬슬 출발해야겠는걸.”
“바래다 드릴게요. 퇴고 어느 정도 또 하시면 또 보여주세요.”
“물론이지, 그런데,”
이번에는 누나가 뜸을 들였다.
“그런데요?”
“모든 일에는 순서란 게 있잖아?”
누나의 말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히 네 초고를 먼저 보여줘야지.”
“네?”
“다음 주, 기대할게! 지각하겠다. 그럼 다음에 봐.”
누나는 그 말을 남기고 강의실로 달려가셨다. 용케 구두를 신고도 빠르게 잘 달리시는 게 신기했다. 달리면서 흔들리는 작은 리본이 귀여웠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사라져가는 구두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혹시나 리본이 떨어질까 봐 바라보았다.
일주일 만에 새로운 글을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새로운 문학을 창조해내는 건 쉽지 않았다. 애초에 문학다운 문학을 한 번도 쓴 적 없던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골방에서 누나를 기다리면서 쓰던 글을 적당히 마무리하고 글에 드러난 누나의 흔적을 지우는 데 힘썼다. 사건이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 글을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제한을 멋대로 부여한 누나 탓이었다. 나는 누나와 다르게 괴테의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는데.
너무도 뻔한 한 겁쟁이 소년이 상냥한 소녀를 동경하는 소설이 태어나고 말았다. 이런 형편없은 글을 누나에게 보여줄 생각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었다. 매주 기다렸던 화요일이 이번만큼은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지구가 멈추는 일은 당연하게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례한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