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나무 1부, 봄과 아카시아 05.
즐거운 여름방학이었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 거짓말이다. 분명히 나를 괴롭히던 일진 무리는 없었지만, 동시에 너 역시도 만날 수 없었다. 날마다 아침을 맞아주는 것은 햇살에 비춘 너의 눈물이었다. 너의 사과를 내 머릿속에서 지워낼 수 없었다. 대체 무엇에 대한 사과였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내 공부가 모자라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단어 한 개라도 더, 문장 하나라도 더 공부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를 재우는 것은 이상하게도 산 녀석의 눈물이었다, 눈물로 시작하여 눈물로 끝나는 슬픈 방학이었다.
개학식 날, 나는 너 대신 산 녀석에서 먼저 다가갔다. 녀석은 언제나처럼 일진 무리와 같이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큰 소리로 이산의 이름을 불렀다. 산 녀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먼저 녀석을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이름을 부른 것도 처음이었다.
“선생님께서 너 데리고 오래.”
나는 거짓말을 했다. 당연히 맞기 싫어서 한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산 녀석이랑 단둘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따로 불러내고 싶었다. 녀석은 언제나 부하를 데리고 다녀서 혼자 있을 때가 잘 없다.
“선생님께서, 갑자기? “
“어, 개학식 때문에 너랑 같이 와 달래.”
나는 녀석을 데리고 아무도 없는 구석으로 데려왔다. 녀석은 내가 엉뚱한 곳으로 데려가니 표정이 일그러졌다.
“선생님께서 불렀다는 건 거짓말이었어.”
“뭐야, 반쪽짜리. 첫날부터 맞고 싶어서 그런 거야?”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주먹이 내 명치로 꽂히기 전에 말을 서둘러 내뱉었다.
“린이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 때리지 말아줘.”
나는 비참하게 구걸했다. 녀석의 주먹은 아팠다. 등교하자마자 맞고 싶지는 않았다. 녀석은 너의 이름이 나오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먹을 거두었다.
“왜, 무슨 일인데.”
“방학 동안, 네가 했던 말, 많이 생각해 봤어. 친구 하지 말라고 그랬잖아. 그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녀석은 질문을 듣고 한숨을 푹 쉬었다.
“말했잖아. 린이 너 싫어한다고, 애가 착해서 너랑 잘 지내 주는 거지 사실은 널 싫어하니까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고작 이거 때문에 불러낸 거야?”
녀석은 다시 주먹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표정이 살벌했다.
“아니, 여기서 더 궁금한 것이 있어서 그래. 내 질문 세 개만 대답해줘. 그 후엔 네가 나를 때리든 걷어차든 순순히 맞을게.”
“뭔데, 어서 이야기해봐. 별거 아니면 정말 죽을 줄 알아.”
녀석의 목소리는 짜증으로 가득했다. 표정은 여전히 험악했다.
“먼저 첫 번째, 너는 어떻게 그걸 그렇게 잘 알아? 린이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야 당연히 알지, 너는 친구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이미 우리 반에 소문이 다 났어. 네가 린이를 좋아해서 따라다니면서 힘들게 한다고. 린이도 그것 때문에 힘들다고 소문이 다 났다고 멍청아. 나 말고 우리 반이면 누구라도 다 알걸. 너만 모르고 있어.”
꽤 충격적이었다. 그런 소문이 돌고 있는지는 상상도 못 했다. 누가 어째서 이런 소문을 낸 것일까. 린에게 호의를 내비친 것은 맞지만 그 순간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싫으면 그냥 나한테 이야기하면 될 텐데 왜 이런 소문을 낸 것인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너를 싫어하는 아이가 낸 소문인 걸까, 그런데 그렇다면 나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는 굳이 덧붙일 이유는 없었을 텐데, 그 영문을 모르겠다.
“그럼 두 번째로 물어볼게. 내가 린이랑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너는 뭐가 좋은 거야? 사실 내가 린이랑 친하게 지낸다고 해도 하루에 말 한두 마디 하는 것이 전부인데, 너랑 별 상관없잖아.”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으면 다른 질문으로 바꿔.”
녀석은 진심으로 화가 났다. 역시 내 예상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을 더 몰아붙였다.
“너도 린이을 좋아하는데 다가가지 않는 이유가 뭐야. 왜 말을 걸지도 않고 친하게 지내려고도 하지도 않는 거야? 심지어 같은 아파트에 살잖아.”
대답 대신에 주먹이 돌아왔다. 핏발이 가득 선 눈은 굉장히 무서웠다. 그럼에도 나는 꿋꿋이 마지막 질문을 했다.
“마지막 질문만 대답해줘.”
“그래, 들어나 보자.”
녀석은 겨우 화를 참으며 대답하였다. 어디선가 어금니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 듯했다.
“내 생각에는 네가 린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한 것도 네가 린이란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것도 모두 네가 린이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아. 그래서 린이 성격 나쁜 너나 성격 어두운 나를 닮을까 봐 가까이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린이는 지금 이대로 있는 것이 젤 행복하고 젤 예쁘니까. 맞지?”
주먹이 내 얼굴로 날라왔다. 녀석은 항상 얼굴만큼은 때리지 않았는데 그 정도로 화가 났나 보다. 너무 아파서 눈물을 참을 수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물었다.
“그래서, 맞냐고!”
녀석에게 소리 지른 것은 두 번째였다. 이판사판이었다. 얼굴까지 맞은 마당에 더 두려운 건 없었던 것 같다.
“맞다! 그래서 어쩌라고!”
녀석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통증은 진작 가셨지만, 눈물샘은 오히려 열려버렸다. 종이 울려고, 개학식이 시작되어도 우리는 그 자리에서 눈물만 흘렸다. 선생이 우리를 찾아올 때까지 그저 울기만 했다.
그날 개학식이 끝나고 녀석은 부하 없이 혼자 날 찾아왔다. 표정은 녀석답지 않게 어두웠다. 녀석은 무슨 일이 없어도 자신만만하고 거만한 표정만을 띄었는데 오늘은 참 다양한 모습을 내게 보였다. 무섭게만 보였던 산 녀석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친근하게 느껴지게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