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고 싶어.”
어느새 입에 붙어버린 이 말을 내뱉은 내가 참 밉다. 집에 있으면서도, 방에 누워있으면서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으면서도 결국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만다. 내 집은 어디길래 그토록 가고 싶을까. 다만 분명한 건 내가 있는 이곳은 아닌가 보다. 비어버린 마음이 이상하게도 유독 저렸다.
잔. 사람의 누구나 빈 잔을 하나씩 가지고 태어난다. 다들 그걸 마음이라는 말로 부르는데 그건 틀린 표현이다. 마음은 잔에 담긴 액체의 특성을 부르는 말인데, 이 차이를 구분하는 사람은 이제는 찾기 힘들다. 피와 포도주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운 한 성인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으면서, 젖과 꿀로 잔을 채워주겠다고 약속한 신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면서 자신의 잔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아는 사람은 잘 없다. 사람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그야 21세기는 합리주의의 시대니, 마음이라는 표현이 훨씬 합리적인 건 사실이다. 다만 과학으로 정의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선조들은 알았을 뿐이다.
나의 작은 머그잔에는 색채가 없는 액체로 넘실거린다. 현대인에게 익숙한 표현을 빌려보자면, 이 검은 액체를 에스프레소라고 비유하겠다. 검고 쓰고 값싸고 아무도 찾지 않는 그런 액체인 건 같으니까. 다만 시중에 파는 에스프레소는 순수한 커피콩을 그대로 갈아냈지만, 내 건 이것저것 섞다가 우연히 만들어진 에스프레소 비슷한 무언가다. 다시 요즘 말을 빌려보자면, 짭이다. 짭스프레소.
사람마다 잔에 담긴 재료가 다르다. 나는 그 재료에 프래그먼트(fragment)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누군가는 특징, 누군가는 성격이라고 부르지만, 파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그 사람을 그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를 지칭하겠다. 이 프래그먼트를 모두 망각하면, 다르게 말해,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증명이 사라지는 것이니 그 사람은 퍼슨(person)에서 휴먼(human)이 되어서 개인으로서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프래그먼트를 잃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모두 사라져버리기 전에 기록으로나마 내가 가졌던 프래그먼트를 남기고 싶다.
소녀의 눈웃음 한 스푼. 비어있던 머그잔에 가장 먼저 들여온 것이었다.
언제나 그래왔다. 한 소녀를 사랑하고, 그 소녀와 조금이라도 시간을 보내기를 기다리고, 소녀를 기다리는 동안 괴로워하고, 결국 소녀와 멀어진다. 소녀를 중심으로 한 서큘레이션이 삶의 원심력이었다. 아니, 살아가는 건 원심력이라고 하기엔 단순한 반작용에 가까웠다. 당연히도 바람직한 삶의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던 소녀와 멀어지는 지금 같은 때에는 또 끝없이 방황하고야 마니까. 이제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어른이니까. 어리광을 부리면서, 억지 부리면서 살아가기에는 나이가 들었다.
소녀를 만나기 전에는 내 세상은 어둡기만 했다. 그야 컵이 비었으니까. 나의 세상에는 색이 없었다. 적록색맹을 넘어 흑백으로 보이던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괴롭지는 않았다. 원래 그랬으니까. 한 번도 빛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맹인의 삶이었기에 빛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앞을 보려 하지 않았기에 앞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망가져 버린 눈동자가 처음으로 포착한 건 작은 소녀의 눈웃음이었다.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빛나는 눈웃음.
소녀를 만난 후로부터는 이런 삶이 괴롭다고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선명한 빛은 눈을 아프게 만들고 그 빛을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소녀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그 눈빛이 나를 다시 실명케 했다. 익숙했던 어둠이 두려워졌다. 이 고통속에서 나는 죽어갔다. 천천히, 또 확실하게, 분명히 나는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검은 머리칼의 검은 눈동자를 한 그 소녀를 마주치기를 조금 기대하면서.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삐뚤어진 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버린 건.
이유 없는 쓸쓸함 한 스푼, 양이 끝없이 늘어나는 프래그먼트.
금세 사랑에 빠지곤 한다고 나한테들 그런다.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품은 감정이 사랑이 맞다면. 그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금방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맞다. 하지만 그 행위는 나를 기만하기 위함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 자신을 속일 뿐이다. 소녀에게 받는 친절로 내 쓸쓸함을 달래고 싶은 것이다. 쓸쓸함은 사라지질 않는다. 내 쓸쓸함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문제지 누군가가 채워주는 게 아니니까.
어쩌면 내가 여태까지 진실로 사랑했던 소녀는 단 한 명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익숙한 방식이 기다림이었기에 누군가를 마지못해 사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아무 감정 없이 그 소녀를 좋아하진 않았겠지만, 진실된 사랑도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추악하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의 잔을 흔드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특히 이유 없이 그러는 건 더욱. 그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이 나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내가 살기 위해서, 더 정확히는 살아갈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행위를 하기 위해서, 이기심에 소녀에게 상처를 주었다. 너무 아파하지 않고 하루를 버텨가는 방법은 이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모든 일은 그 대가가 따른다. 내가 낸 상처는 부메랑이 되어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더한 상처를 가져오고, 그 상처로부터 버티기 위해 또 다른 소녀를 사랑하고 만다. 끔찍하고도 이기적인 순환의 고리다.
후회 한 스푼, 그리움 한 스푼, 자책에서 비롯한 자기혐오 한 스푼.
사람은 적응의 동물, 그리고 망각의 동물이지만, 나라는 존재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여전히 나 자신이 너무 작아 보인다. 주변 사람들은 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반짝반짝 빛을 내면서 걸어가는데, 거울 속의 나는 형태가 없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잘 모를 때가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그저 후회와 한탄으로 하루를 마치고, 이제는 누군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소녀를 그리워하고 만다. 그리고 억지로 하루를 버텨내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젠 타인이 말하는 내가 잘하는 것은 모두 빈말 같고, 전부 겉치레로 하는 말로만 들린다.
남의 시선 같은 건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이미 나는 남들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로 다르니까,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나를, 나만을 바라보았더니 그게 괴로웠다. 벌써 20살이 넘은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버린 나이임에도 여전히 생각이든 행동이든 뭐든 어린이 같다. 너무 빨리 시간이 흘러버려서 어른이 되고 말았다고 세상을 탓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건 알고 있다. 지나간 시간을 조금 더 소중히 할걸이라고 후회가 다시 나를 침식한다.
당근은 평생 먹어본 적이 없다. 게으른 당나귀를 움직이는 데는 채찍 말고는 답이 없다. 그리고 스스로도 어느새 채찍질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채찍으로 맞는 건 아프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무기력감은 더욱더 아프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의 배출구가 필요하다. 뒤틀린 방법이라도 자신의 나쁜 감정을 뱉어낼 필요가 있다. 이론만 빠삭했다. 결국, 채찍을 휘두르는 쪽도, 맞는 쪽도 모두 나인걸. 이제는 나를 미워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너무 많이 미워해서 더 나를 미워할 건더기가 없다.
어느새 가득 차 버린 머그잔을 보며, 생각에 잠기고 만다. 나중에 에스프레소에 사과를 해야겠다. 이런 걸 비슷하다고 하다니. 달콤한 씁쓸함이 가득한 에스프레소에게 실례였다. 나는 이런 컵은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어서 잔을 천천히 비워버렸다. 잔에 늦게 담긴 순서로 사라져갔다. 잘 섞인 줄 알았는데, 겉보기로만 그랬나 보다. 물과 기름처럼 한층 한층 쌓여있던 프래그먼트가 하나씩 사라져갔다. 모두 사라지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걸 앎에도 멈출 수 없었다.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하는 것처럼 기존의 것을 모두 비우지 않으면 새로운 사람이, 시대에 맞는 어른이 될 수 없다. 하나씩 나의 괴로움이 사라져가고 점점 무감각하게 변해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소녀의 눈웃음만큼은 남길까 고민하다 이내 그마저도 전부 비워버린다. 안녕. 지나간 나는 이대로 떠나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바닥에는 도망치고자만 하는 소년의 비겁함이 바닥에 가라앉아있었다.
섞이지 않은 게 아니었다. 프래그먼트의 본질은 모두 하나로 섞여서 바닥에 가라앉은 거였다. 그리고 남은 찌꺼기만이 한층 한층 쌓여있던 모양이다. 이 알갱이들은 너무 무거워서 아무리 잔을 털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기회는 여럿 있었다. 내가 매번 외면했을 뿐이다. 겁이 난다는 이유로, 회피했을 뿐이다.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멀리 달아난 나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결국, 지금도 두렵다는 이유로 내 잔을 마주치지 않고 모두 비우려 했으니까. 저 검은 알갱이를 보고 있으면 구역질이 난다.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한 내 바닥은 추악했다.
비울 수 없다면 깨뜨릴 수밖에 없다. 내 잔을, 내 프래그먼트를, 내 마음을 부숴버린다면 모든 게 편해지지 않을까. 더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니, 괴로움도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만에 하나 잘못되더라도 그편이 지금보다는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나만의 피날레. 지휘자도 앙상블도 없는 작고 조용한 피날레가 시작되고 말았다. 나는 내 작은 머그잔을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나를 떠나버린 머그잔은 아주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굿바이
빛나는 별이 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어. 누군가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북극성 같은 별 말야. 그 꿈을 잊어버린 지는 얼마나 오래 지났을까. 다시 떠올린 이 순간에는 스타는커녕, 어른조차 되지 못한 사람만 존재했어. 그 좌절감은 꽤나 마음을 좀먹더라. 재능 없음을 눈치챈 순간은 너무 늦은 순간이라 되돌릴 수 없었어. 별이 되지 못하고 무엇이 돼가는 걸까. 걸어온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겠어. 다만 이미 초라한 뒷모습이 후회로 가득 차지 않도록.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걸어가자. 뒤를 돌아보지 말자. 지나온 길은 추억으로 남기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자......
누군가의 마지막 주마등에는 별님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소년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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