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어느새 만 20세가 넘어버렸고
영영 떠나지 않을 줄 알았던 고향을 떠나고
타지인 조국에 돌아온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가고
그 사이에 더 나약해진 내가 있었을 뿐이다.
아수라장을 벗어나면 행복해질거라고
믿어 의심지 않았던 나는 순진했다.
행복은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에 비해 불행은 너무도 쉽게 다가온다.
우울의 파도에 잠긴지도 10년이 지났을텐데
아직도 가라앉고 있는건 얼마나 깊은 심해로 떨어지는 걸까.
이미 팔도 다리도 뜯어먹힌 나는 한 없이 발버둥도 치지 못하고.
천천히 푸른 우울의 바다에 깊은 곳에 붉은 피를 뿌린다.
이제는 그만 포기하고 싶어도, 세상은 그러지 못하게한다.
바라봐주는 누군가가 있는게 사실 별거 아니라는 거란걸 알아도.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서 그들이 신경쓰이고 만다.
본인보다 더 걱정되고, 본인보다 더 소중하다.
이미 몸도 마음도 모두 망가졌는데도 어째서 포기하지 못하는걸까.
그건 무심하지 못한 사람이라 그런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정을 많이 주는 사람이 되버렸을까.
그 매정한 사이코녀석은 어디로 가버린걸까.
마음이 망가지니까 마음의 문이라는게 남아있을리 없었다.
문을 지키는 자는 죽은 지 오래였고 그 시체마저 한 줌 흙이 되었는데
그 흙에 꽃을 심은 사람들은 고약한 악취미를 가진게 분명하다.
그러자 문틀을 따라 꽃덩쿨로 된 문이 생겨버렸으니까.
마음을 멋대로 점거하니까 산소호흡기를 땔 수 없었다.
저 사람만 마음에서 내보내고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불러모으고 말았다.
가장 소중했던 사람을 겨우 떠나보냈는데 그새 소중한 사람이 더 늘어버렸다.
무심한 사람이었다면, 냉정한 사람이었다면 좋았을걸.
그럼 지금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그 사람들에게 물들어버려서 나 자신을 조금 아끼게 되버렸다.
예전처럼 스스로를 미워하지 못하는 약한 사람이 되버렸다.
갑자기 들이 닥친 최초의 행복감은 너무도 비현실적이라서,
아직도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내가 그리던 고향에서도, 내가 꿈꾸던 조국에서도 아닌
내 마음에서 느껴버린 행복은 나를 아프게한다.
아직도 매일 아침 눈을 뜨는게 무섭다.
이 모든게 전부 꿈일까봐.
눈을 뜨면 다시 하늘에서 심해로 떨어지고 있을까봐
심해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거짓일까봐.
겁쟁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건 없는데
왜 이 사람들은 한낱 한량을 이토록 아껴주는 걸까.
이성적인 판단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꿈이라고 의심하지.
지금 이 순간 눈물이 흐른다는건
내가 아직 꿈에서 깨지 않았다는 거겠지
이게 꿈이라도 좋으니 평생 깨어나지 않기를
행복을 알아버린 이상 다시 불행을 마주칠 용기가 없다.
자주 외롭고, 자주 괴롭고, 가끔 행복하더라도
그 가끔의 행복을 알아버린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어제도 눈물로 밤을 새우고 오늘도 악몽에서 겨우 깨어나겠지만
저 사람들이 함께라면 조금은 내일을 기대해도 되지않을까.
10년전의 꼬마가 원하던 오늘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10년 후의 아저씨가 만족할만한 오늘이 아닐까.
이 꿈 속 너희와 함께한 시간은 정말이었을거야.
그러니 꿈이 깨어나도 행복해져볼게.
이 꿈이 내 처음이자 마지막 행복일지라도 말야.
언제간 똑같은 꿈을 꿀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조금만 더 기운을 낼게. 조금난 더 힘을 낼게.
그러니 조금만 행복해해도 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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